지난 2월 27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강원도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조건부 동의 의견을 내놓았다. 1982년부터 강원도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주장해 왔으니, 40년 만에 빗장이 풀린 셈이다.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사실상 허가함에 따라, 지리산과 속리산 등 환경 문제로 잠정 중단됐던 케이블카 사업 계획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강원도 15대 정책 과제 중 하나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2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던 기자 간담회에서 지리산 케이블카는 주민 숙원사업이므로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앞서 박 도지사는 2월 23일에 함양군에서 진행된 ‘함양군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미 이런 내용을 말한 바 있다.
함양군민과의 대화 당시, 마천면 이장단협의회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건의하자, 박 도지사는 “대통령과의 회의에서 ‘토지이용규제’와 ‘환경규제’를 풀어 달라고 항상 얘기한다. 대통령도 그 부분에 대해 긍정적이다. 산청과 함양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거리라서 어려움이 있다. 도지사 업무가 정리되면, 케이블카 예상 지역 군수들과 함께 협의해서 순차적으로 단계별로 진행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경남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2월 산청군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됐을 때부터다. 이에 함양군도 2007년부터 관광 활성화 및 세수 증대를 목적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남 구례군의 경우는 1990년대부터 지리산온천과 성삼재를 연결하는 2.9Km 구간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추진해 왔고, 2008년에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전북 남원시는 주천면 고기리에서 정령치를 연결하는 4Km 길이의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2008년부터 추진해 왔다.
환경부가 2009년 5월에 입법 예고한 ‘자연공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2010년 10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함양군(백무동~제석봉), 산청군(중산리~제석봉), 구례군(지리산온천~노고단), 남원시(고기마을~정령치) 4개 시군이 케이블카 설치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개정된 ‘자연공원법 시행령’의 내용이 공원자연보존지구 내 로프웨이 설치 허용 규모를 2㎞ 이하에서 5㎞ 이하로 늘이고, 로프웨이 정류장의 높이도 9m에서 15m로 조정됐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장거리로 설치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2009년 10월부터 함양시민연대·지리산생명연대·남원생협·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등으로 이뤄진 지리산권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연대 투쟁을 벌였다.
또한 화엄사·쌍계사·벽송사·대원사·실상사 등으로 이뤄진 ‘민족성지 지리산을 위한 불교연대’도 지리산 천왕봉·반야봉·노고단 등에서 시위를 하며, 지리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다.
함양군은 2010년 11월 10일에 지리산 케이블카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를 보고하고, 행정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함양군은 용역에서 4개 노선을 검토한 결과 백무동~장터목 노선이 조망이 수려하고 기존 주차장 등 기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장 유력하다고 발표했다.
이후 함양군은 2011년 12월 21일 환경부가 개최한 제93차 국립공원위원회에서 국립공원 삭도(케이블카) 시범 사업 검토 대상 7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날 국립공원위원회는 7곳에 대해 기준·방법·절차 등을 심의해서 2012년 6월에 최종 시범 사업 대상을 선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함양군은 2012년 1월 17일에 ‘지리산케이블카 유치위원회’ 발대식을 열어 거리 행진을 벌였고, 이후 군민들의 유치 서명을 받아 환경부에 전달했다.
2012년 2월 21일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경남·전남·전북 도청에서 각각 기자 회견을 열고,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졸속으로 시범 사업 대상을 선정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2012년 6월 26일 환경부는 국립공원위원회를 열고 사천시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케이블카 시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던 지리산·설악산·월출산 국립공원 권역 6개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탈락한 것이다. 경제성 조사만 따지면, 구례군은 1.03점·남원시는 0.89점·산청군은 0.7점·함양군은 0.53점으로, 함양군이 가장 낮았다.
함양군은 시범 사업 대상 탈락 직후, 야생동물 서식처 보호를 위한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에 포함된 케이블카 설치 구간을 일부 변경해서 환경부에 다시 신청하기로 하고, 백무동에서 장터목 대피소 아래 망바위까지 3.4㎞ 구간에 50인승 케이블카 2대를 왕복·운행할 계획을 세우며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2014년 2월 21일 윤성규 당시 환경부장관은 지리산 케이블카 문제와 관련해서 "지자체 간 합의를 통해 호남과 영남에서 1곳씩 신청해 주면 관련 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윤 장관의 발언 이후, 2014년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경남·전북·전남 지역 선거 후보자들의 선거 공약이 됐다.
2015년 1월 12일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는 기자 간담회에서 "함양·산청이 지리산 케이블카를 공동 설치하기로 했다. 경남발전연구원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함양·산청 지역 지리산을 ‘산지관광특구’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라고 밝혔다. 당시 함양군·산청군의 공동 추진 노선은 백무동(함양)∼장터목∼중산리(산청) 구간 9.3㎞로, 함양군이 4㎞, 산청군이 5.3㎞였다.
정부는 2014년 8월에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산지관광특구’ 제도를 도입해서 국립공원을 포함한 주요 산지에 케이블카와 산악호텔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일괄 해제한다고 밝혔는데, 이 발표를 근거로 경남도는 지리산이 ‘산지관광특구’로 지정될 수 있게 준비했다. 특구로 지정되면 함양군·산청군에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7월에 개최된 8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정부는 산지관광특구의 범위에서 국립·도립·군립공원 등 산지보호구역을 제외했고, ‘산지관광특구’ 명칭도 ‘산악관광진흥구역’으로 축소·조정했다. 따라서 함양군·산청군의 공동 케이블카 추진은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2015년 8월 28일에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양양군 오색리와 끝청봉을 운행하는 3.5㎞ 구간의 오색케이블카 3차 신청안을 승인하면서, 함양군·산청군의 공동 케이블카 추진은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경남도 서부권개발본부와 함양군·산청군 케이블카 담당자들은 2015년 8월 31일에 케이블카 계획 재신청 관련 회의를 했는데, 이날 검토된 구간은 산청군 중산리에서 장터목까지 5.5㎞, 장터목에서 함양군 백무동까지 6.5㎞로 전체 길이가 12㎞에 달했다.
이에 경남·전남·전북 지역 환경 단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공동행동’을 만들고 장기 집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강원도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 평가서가 조작됐다는 환경 단체의 주장으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법정 공방에 들어가면서 함양군·산청군 케이블카 사업은 잠시 주춤했다.
경남도는 2016년 5월에 '산청 중산리~장터목~함양 추성리'를 잇는 10.6㎞ 구간의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환경부에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남도는 환경부의 심의를 통과하려고 관계 법령을 준수하는 수준에서 최적화된 노선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2016년 7월 6일에, 공익성이 부적합하다는 이유와 함양군과 산청군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남도가 제출한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서’를 반려 조치했다.
경남도는 2016년 12월 29일에 다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2017년 2월 9일에 다시 신청서를 반려 조치했다. 반려 이유는 환경부가 2016년 7월에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이 공익성·환경성·기술성에서 부적합하다고 통보했는데, 이를 보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케이블카 사업은 지리산에서 영영 사라진 듯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함양군의 케이블카 설치 사업은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런데 지난 2월 27일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조건부 동의 의견을 내놓으면서 전국 각 지자체마다 묵혀 둔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함양군의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3월 2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기자 간담회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박 도지사가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내용뿐이라서 시민사회단체의 공식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시민사회단체가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돌입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경남과 전북·전남의 갈등도 있었고, 함양군과 산청군의 대립도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 간의 반목도 첨예했다. 그리고 행정력 낭비라는 지적 또한 있었다. 지리산에 다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진행된다면, 행정력 고갈 논란은 물론 온갖 종류의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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